
계속 기운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데도 사실 약간의 우울한 기운을 떨칠 수가 없다. 사무실 안에서 내 자리는 또 얼마나 추운지... 목도리에 롱코트까지 걸치고는 뜨거운 자스민차가 가득 든 머그잔에 손을 녹인다해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느낌이 무뎌질 정도로 차갑다. 털모자까지 쓰고 있어야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건 좀 오바야... 라는 마음에 참는다. 게다가 내가 앉은 자리가 조금 오픈이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도할까봐... 파견 나가 있는 무지 좋아하는 선배가 오랜만에 내 자리에 들렀는데 그녀는 내 큐비클에 들어서자마자 놀란다. '넌 어떻게 또 제일 추운 자리냐...'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지? 다시금 확인을 하고는 기분이 조금 덜 우울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제 너무나 추워서는 근무시간 중 적어도 3시간은 춥다... 추워.. 손가락을 못느끼겠어... 이거 뭔가가 잘못 된 거야. 이렇게 추울리가 없쟎아... 라는 생각으로 때운 것 같다.
8시에 출근, 아침을 안먹어서는 9시 50분이 되니 무척 배가 고프다. 그리고 몸이 너무 추워서는 따뜻한 밥 한 공기를 훌훌 말아 넣은 국밥에 김치가 너무나 먹고 싶다. 마침 휴가 중인 dam군을 g-talk에서 발견 지금 당장 국밥이 먹고 싶으니 (사실 국밥은 뭔지 모르니 그냥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를 데리러 오너라 했다. 그랬더니 준비하고 나오겠단다. 한국음식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ㅡㅡ 선듯 나서준다니 놀랍다. 사실 dam군네 집은 우리 사무실에서 5분 거리... 준비가 느린 dam군 11시에 주차장에 왔으니 내려오라고 한다. 다행히 오늘의 업무는 이메일로만 왔다갔다 (아마도 오전에만 한 50통 받은 거 같아...) 하는 데다가 미팅도 없고 보스도 영국으로 휴가 중이니 좀 일찍 밥 먹으러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한식집에 가서 해장국밥을 시켰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와 먹으니 얼었던 몸이 녹아내리면서 잠깐이지만 너무나 행복해졌다. dam군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dam군이, "나 한국으로 일하러 갈까?" 라고 얘기한다. 응? 뭔 소리? dam군과 그 주위 사람들은 돈 많이 받고 전세계 여기저기에 널려진 건설현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dam군과 절친한 k군(가끔 등장하는)은 지난 10여년 동안 그렇게 유목민 인생을 살았다지...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적대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한국에는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더라고 (+덧/ 이렇게 포스팅을 올리고 나서 이런 링크를 찾았다... 좀 씁쓸하지...). 밴쿠버에 dam군과 같이 온 k군은 6월이면 호주로 가겠다고 하는데 dam군은 내가 원하는 거 같으니 자기가 한국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는 거다. 어쨌든 생각만이라도 고마워.
그러고는 밥을 먹는데 (dam군은 돌솥비빔밥을 시켰다) 갑자기 올해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은 뭐가 있냐고 묻는다.
- 나 잘 모르겠는데?
- 가고 싶은 데는 있어?
- 음.... 나 마츄피츄...
- 거기에 뭐가 있는데? (dam군은 내가 언제나 어디 가고 싶다 그러면 냉소적으로 묻는다, 거기에 뭐가 있냐고... 꼭 거기에 뭐가 있다고 가고 싶은 건데?라는 투로... 근데 오늘은 좀 달랐다.)
- 잉카문명...
- 그래? 나도 가고 싶어. 가이드 투어로 가야겠지?
- 정말?
- 왜 놀라?
- 당신은 그런 거 싫어하잖아.
- 아니야 안싫어해...
갑자기 이상하다. dam군... 올해 뭐 맘을 다시 먹었나?
참 새해부터 담배도 줄이겠다고 난린데.. (점점 줄이다 끊겠단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올해 dam군이 이루고 싶은 일들은 뭐야?
- 음... 일단 널 행복하게 해줘야하는 게 젤 큰일이고... 그리고 버밍험에 집을 사고 그걸로 융자를 받아 런던에 집을 사고... 미국에도 투자를 좀 하고... 아 3월달엔 홍콩에 HongKong Sevens (홍콩에서 하는 럭비 토너먼트인데 엄청나게 마시고 놀고 먹는 기간이란다. 친구들끼리 만나기로 했다나 뭐라나.. 나도 따라갈까 했는데... 차라리 이 기간에 한국이나 갈까 생각 중) 아 그리고 너랑 마츄피츄에 갈 거야.
왜 이렇게 나이스해졌지? dam군.... ㅡㅡ;;
나이스해지니 요 근래 는 뱃살도 이뻐보이네...
산다는 건 어쩌면 그냥 이런 작은 순간들의 이어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국밥을 먹으면서 소박한(?) 내일을 얘기하는 거... 그게 산다는 거다...


덧글
블루 2008/01/04 09:14 # 답글
꺄아아아아 이 글을 읽는데 왜 제 기분이 좋아지는걸까요? ㅋㅋ
쿨짹 2008/01/04 09:20 # 답글
흐흐 글세요. 블루님도 국밥이 고프신 게지요~~ ㅋㅋ
mini 2008/01/04 09:57 # 답글
국밥먹고싶어졌어요 ㅡ.ㅡ;;
conpanna 2008/01/04 10:26 # 답글
저도 손시려워 죽겠어요. 쿨짹님도 손난로 주문 좀 하셔야겠는데요 :)그나저나 이거 읽다보니 살짝 염장성 포스팅이었다는;
2008/01/04 11:2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HanSang_환상 2008/01/04 11:34 # 삭제 답글
'춥다가 따뜻해지는' 내용이에요 언니... 사는게 다 그런 건가봐요.요새 정말 주변에서 보면 up and down의 flow가 인생이라는 걸 느낍니다... 뭐 저도 결국은 비슷하겠지만요.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 나세요. 그리고 우리는 곧...!
니야 2008/01/04 11:57 # 답글
아 우리 담군 착해졌군요! 나이쓰
이온 2008/01/04 12:08 # 답글
"일단 널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게 젤 큰일이고..."우왕.. 이 부분에서 괜히 제가 막 감동이..! ;ㅁ;
오늘의 두 분은 특히나 보기 좋습니당. >.<
이런저런 2008/01/04 12:44 # 답글
부럽삼..^^
러브네슬리 2008/01/04 13:45 # 삭제 답글
정말 소박한 멋이 느껴지는군요..산다는 건..굳이 철학적이고 어렵게만 볼 필요는 없겠네요 ^^
카린 2008/01/04 15:19 # 답글
정말 뱃살도 이뻐보일만하겠는데요 ^^그저 부러울 뿐이네요
첫비행 2008/01/05 20:14 # 답글
초반 우울하신가 했더니, 마무리를 보니 염장성 포스팅이었군요. ^^ 춥다가 따뜻해지는 기분이어서 좋습니다. 페루는 정말 강추에요^^ 꼭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