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범상치 않은 교육철학을 갖고 계셨다. 우리 때만하더라도, 공부에 관련된 학원은 중학생이 되고 부터 다니기 시작했었는데, 남들 다 다니는 학원을 난 절대로 못다니게 하셨다. 하교를 하고 친구들이 끼리끼리 학원을 가는 걸 보면 얼마나 부럽던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아버지께 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공부는 본인이 하는 거지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 단계가 높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습 내용이라도, 대강 훑기 시작하면 나중에 학교에서 배울 때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하시며 중학교 2학년 생인 나를 중학교 3학년을 위한 영어, 수학 학원에 보내셨다. 같은 반 중학교 3학년 생 언니들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요즘 아이들 같았으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서열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언니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나온 중학교는 내가 1회라 내가 1학년 땐 1학년만, 2학년 땐 2학년 까지, 내가 3학년이 되는 해, 처음으로 중 1, 2, 3학년을 다 갖추게 된 학교이기 때문이다.
내가 중 3 영어 수학을 얼마나 잘 따라갔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바닥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다 제대로 이해하며 학원을 다녔다고도 얘기하지 못하겠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내가 이 얘기를 시작한 건 영어 수학을 얘기하자고 함이 아니다. 같은 반 언니들에게 배운 건, 영어 수학보다 더 중요한, 그때 정말 유명했던 팝 아이돌들의 음악이었다.
그때 나는 뉴키즈온더블록이라는 보이밴드를 알았다. 그들의 현란한 골반춤에, 그들의 미소년 외모에, 그리고 발랄한 음악에 흠뻑 빠져버렸었다. 조던 나이트는 내 우상이었다. 그들의 음반을 LP로 사모으기 시작했고, 문법 적으로 맞지 않는 구어들로 이루어진 가사들을 외우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 뉴키즈온더블록 팬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청개구리 띠인 나는 대부분의 대중들과 내 아이돌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데에 불만이 있었다. 그런 즈음에 언니들로부터 소개받은 영국의 팝 듀오가 있었으니, 혜성처럼 나타난 이들은 바로 왬(wham)이었다.
왬은 사실 내 전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사이먼 앤 가퍼클 등 처럼) 아버지의 소개로가 아닌 내 스스로 발견해서 심취하게 되었을 때 왬은 벌써 해체된 후였다. 그후 왬에서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조지마이클은 첫 솔로 앨범으로 내가 감히 명반이라고 부를만한 앨범 “Faith”를 대박 히트냈다. 그의 음악은 뉴키즈온더블록의 그것에 비교해 훨씬 더 성숙한 음악이었고, 영어도 못하는 내가 가사를 줄줄 외고 다닐만큼 그렇게 빠지게 되었다.
며칠 전 어메리칸 아이돌 시즌 피날레가 방영되었다. 어린 데이비드 (데이비드 아츌레타) 대 록커 데이비드 (데이비드 쿡) 결승전이었는데 미국인들의 최종 선택이 밝혀지게 되는 그 방송에서 어메리칸 아이돌의 이번 시즌 탑 12가 나와서는 지난 20년 동안 크게 히트했던 죠지마이클의 노래들을 메들리로 부르는 것들이었다.
그러더니 몇 분 후, 죠지마이클 당신이 두둥하고 등장하는 게 아닌가. 그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생각도 안난다. 아마도 십수년 전, 엘튼 죤과 듀엣으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렀을 때리라.
어린 아이들은 잘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현장에 있던 대중들이 열광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감미로웠고 깊이 있었다. 그가 내가 그의 노래 중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Pray for Time”을 부를 때, 내 몸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인 90년대 초반을 휩쓸던 댄스 가수, 폴라 압둘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는 서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때 갑자기 생각났다. 그가 밴쿠버에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Ticketmaster 웹페이지에 갔더니 그의 밴쿠버 공연은 7월 4일.
나머지는 얘기하나 마나…
죠지마이클을 알만한 나이의 친구를 급구해 내가 태어나서 구입한 중 제일 비싼 공연의 티켓 두장을 결제해버렸다. 세금 합해서 $431.
내가 그날 그 시간에 어메리칸 아이돌을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죠지마이클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 짠순이인 내가 제 정신을 가지고 한 장에 $200이 넘는 공연티켓을 구입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운명이라 생각했다. 십 수년 전 죠지마이클에 열광하던 십대의 내가 생각났다. 평소의 소비에 걸맞지 않는 구입이었지만 뭐…. Who cares?
7월 4일, 내 아이돌, 죠지마이클을 보러 간다. :)
+ 이번주 D모 지에 실릴 글입니다. ㅡㅡ 미리 방출해도 별 영향 없으리라는 걸 알기에...


덧글
hskay 2008/05/28 08:28 # 답글
광고 보자마자 비싸겠다며 제쳐놨었는데 역시 비싸군여 ㅎㅎ 근데 지른 심정 정말 공감가요. 아메리칸 아이돌 보다가 몇번씩 울컥할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돈이 없거나 가수가 밴쿠버에 안와서 못질렀다는..
2008/05/28 08:3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08/05/28 09:0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쿨짹 2008/05/28 09:17 # 답글
hskay/ 흐흐 그렇죠. 저도 울컥해서 체크하고 밴쿠버에 안오는 거였으면 $431 세이브하는 건데 그랬어요.비공개/ 감사합니다.
비공개/ 맞습니다. :) 뭐 이정도를 비공개로 남기시고... ㅎㅎ
댕글댕글파파 2008/05/28 09:34 # 삭제 답글
나도 보고싶당 ㅠ_ㅠ내가 처음으로 가사 외우면서 부른 노래가 last christmas인뎅 ㅋㅋ
Faith 뮤직 비디오는 진짜 단순한데 의외로 중독적이었던....
하느니삽 2008/05/28 10:07 # 답글
조지 마이클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제가 가본 공연 중에 젤 비싼 것도 두당 200불 정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는데 취향이 아니라 30분쯤 보다가 잤습니다. -_- 좀 아깝더군요.
Labyrins 2008/05/28 11:17 # 답글
조지 마이클 공연이라니...정말 부럽습니다..ㅠ.ㅠ
ZENO 2008/05/28 11:20 # 답글
굳 지름이죠. ㅋㅋ
lostnfound 2008/05/28 12:12 # 답글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xmaskid 2008/05/28 13:07 # 답글
헉! 정보 감사드립니다~ 주위에 조지 마이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저는 몬트리올이나 뉴욕으로 가게 될거 같네요~
Beatmania 2008/05/28 15:48 # 삭제 답글
아직도 공연도 하는군요. 역시 올드팬들을 위한 서비스?!D모지가 어딘가요?
짙푸른 2008/05/28 19:33 # 답글
잡지에 실릴 글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 음악이었다" 부분은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과감히 잘라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hislove 2008/05/28 22:35 # 답글
전혀 딴 소리이긴 합니다만, 요즘은 Faith라고 하면 조지 마이클이 아니라 림프 비즈킷을 먼저 떠올리는 아이들이 많을 듯 해요.이것도 전혀 딴 소리이긴 합니다만, 역시 리메이크보다는 원곡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림프 비즈킷의 리메이크 버전도 나름 좋아하긴 합니다만. :)
쿨짹 2008/05/28 23:15 # 답글
댕댕파/ 캬~~ 명곡이지 ㅋ하느니삽/ 전 제가 꼭 좋아할 거 아니면 안갑니다. 흐흐 런던에서 뮤지컬 본 것들은 아마 환산해서 한 160불 정도 했었던 거 같네요. ㅠㅜ 비쌌어요.
Labyrins/ 흐 감사합니다. :)
ZENO/ ㅋ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lostnfound/ 감사합니다.
xmaskid/ ㅎㅎ 동부에 계시는군요. :)
Beatmania/ 몇년만에 처음 북미 순회를 한다더군요. 밴쿠버 로컬 D모지랍니다. :)
짙푸른/ 감사합니다. 흐 전 편집의 힘을 ㅡㅡ 굳게 쓰는 아마츄어라서요. ㅎㅎ
hislov/ 림프비즈킷 버전 첨 들었을 때 뒤집어졌죠. 흐흐 미친 거 아냐? 하면서 ㅎㅎ 원곡이 더 좋다는 거 원츄~
자그니 2008/05/29 13:51 # 답글
저도 저 음반 있었는데... o_o;;; 하지만 엄한 티파니-니, 데비 깁슨이니-하는 여성! 아이돌 가수들을 더 좋아할 때라...
비_ 2008/05/31 16:36 # 답글
으흐흐흐. 오늘 읽었습니다 D모지. +_+지면에서 쿨짹님 글을 대하니 뭔가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ㅡ^
미친병아리 2008/06/02 01:25 # 답글
넘 부럽삼.. 아마 저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결제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