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Thoughts

1993년 9월 1일, 이민가방으로 중무장한 우리 가족은 태평양을 건넜다. 그때 난 고등학교 2학년. 그때까지 이민이나 유학가는 친구들이 가기 전까지 학업에 소홀하는 모습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안좋게 보여진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마지막까지 이민간다는 사실을 숨기고 여름 방학 내내 보충수업까지 다 마쳤었다. 8월 말 개학을 하면서 자퇴를 해야했고, 그렇게 내 한국 고등학교 정규과정은 고 2, 2학기가 되기 전에 끝났다.

고2라면 이민가서 영어를 제대로 배워 대학에 제때 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냐 하는 주위의 염려에, 부모님께서는 많은 고민을 하셨다.

1) 어느 도시에 정착을 할 것인가.
2) 사립학교를 갈 것인가 공립학교를 갈 것인가.
3) 10학년으로 낮춰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11학년으로 제대로 들어갈 것인가.
a. 11학년으로 들어갔을 경우 2년 안에 대학에 갈 수 없는 상황이면
i. 12학년을 반복하던가
ii. 아니면 College에 먼저 진학을 해서 편입을 하던가

결국에 우리는 공립학교들이 좋다는 빅토리아에 정착을 하게 되었고, 어차피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니, 사립학교에 갈 필요가 있나, 일단 공립학교에 11학년으로 입학해보자 하는 걸로 결론이 났고, 그렇게 난 노동절 다음날이었던 1993년 9월 6일, 11, 12학년만 있는 Senior Secondary School에 발을 들였다.

그 후 1995년 6월, 졸업할 때까지, 20개월이 좀 넘는 시간은 지금 회상해봐도 오래전 본 영화처럼 기억날뿐, 왠지 모르게 내가 경험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리 쉽지 않은 기간이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한국에서 공부 좀 했었는데, 말을 못하는 나는 여기서 바보 같이 느껴졌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고, 선생님들도 가까운 친구들도, 다 이해를 해줬을 부분인데 아마도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던 거 같다.

난 빅토리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2년 동안, 영어, 수학, 물리, 화학, 그리고 미술만 열심히 했었다. 수학, 과학 경시대회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볐고 (그 때문에 꽤 괜찮은 성과도 있었지만) 수업이 끝나면 미술실에 남아 그림그리는 데 전념했었다.

그때 내 주어진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머리가 더 큰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내가 좀 더 현명했었으면 이런 것들을 좀 더 잘했을 텐데 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학교 학생회에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미련이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리더쉽이라는 커리큘럼이 있었고 그 과목에 참여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학생회 학생들이었다. 내 친구들은 주로, 소위 말하는 공부벌레들 (미적분, 수학, 물리, 화학등의 과목들을 집중적으로 듣게 되니)이었는데,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좀 더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역시 영어가 제대로 안되었던 터라, 이런 활동에 나서지 못했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둘째, 작품활동을 좀 더 열심히 했었으면 하는 미련이 있다. 물론 시간이 날 때마다 남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었지만, 한국의 중고등학교 시스템에서 미술은 이런 거다. 연필 뎃생은 이렇게, 수채화는 이렇게 그려야한다.. 라는 틀에 메인 스타일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용기를 주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고 그게 좀 아쉽다.

셋째, 대학입시 준비를 좀 더 잘할 걸 하는 미련이 있다. 그때만해도, 빅토리아엔 한국학생들 (11학년 12학년을 통 털어 우리 학교에 한국말 하는 한국 학생은 나를 포함 세 명이었다.) 이 거의 없었고, 나도 영어를 못하는데다, 부모님께서도 새로운 곳에 오셨으니, 누구에게 대학입학 준비를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 물어볼 사람들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학원도 많고, 유학원도 많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용기가 있고 부지런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엔 인터넷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어쨌든 난 내가 일차로 가고 싶었던 학교들의 지원시기를 놓쳤었다.

넷째, 체력을 좀 더 강화할 걸 하는 미련이 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체육은 꽝이었다. 취미도 그림이나, 음악, 책읽기와 같이 정적인 것들 뿐이었다. 공부는 대학에서부터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공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입학은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부는 체력싸움이었다. 후에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캐네디언 친구들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욱 제대로 해오던 운동이 한 가지씩은 있었는데 난 그런게 없었다. 같은 공부를 하기 위해, 난 남보다 더 많이 자야했다. 그래서 그때 별명이 “Sleepy Kay”였다지. 고등학교 때 공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체력보강이라고 믿는다. 물론 체력은 대학때 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필요한 것이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막 태평양 건너 온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아니 아는 게 거의 없었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난 그 당시 내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이런 잔잔한 미련은 남는다. 하지만 뭐, 세상사는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앞으로 더 잘하면 되는 거지. :)

+ 밴쿠버 D모지에 올라갈 글입니다.  ㅡㅡ;; 오랜만에 술술 써내려가진 글이네요.  요즘 이런 거 드물어요.  일상의 잡담이 아닌 경우에는 말입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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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uvcoco 2008/06/18 02:18 # 답글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수학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겠어요
    문제 유형을 외우는 게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도록 애쓰는...
    그리고 포기했던 물리에 재도전해 보고 싶어요!
  • ㆍㅅㆍ 2008/06/18 02:34 # 답글

    저는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꼴이다 보니 지금 생활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겠다는 기분이 먼저 드네요. ^^
  • Charlie 2008/06/18 02:56 # 답글

    로또번호를 기억하겠어요! 라고 생각하는 저는........... 흑흑 세상이 절 이렇게 만들었어요. (야!)
  • 마르슬랭 2008/06/18 05:48 # 답글

    제가 만약에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 너무 쉽게 포기했던 것들을 붙잡을 거에요. (아잣!)
  • 쿨짹 2008/06/18 07:04 # 답글

    럽코/ ㅋ 난 수학 좋아했었는데.. 물리도...
    'ㅅ'/ 흐 좀 부러운데요. :)
    Charlie/ 오~~ 역시 Charlie님 천재.. ㅋ
    마르슬랭/ 어떤 것들일까요. 궁금해지는데요 ^^
  • BlueCT 2008/06/18 07:54 # 답글

    나같이 미술 하나도 안 하다가 대학 와서 고생한 케이스도 있는데 뭘 그려? ㅋㅋㅋ 잘 살았구만.
  • JasonPA 2008/06/18 09:58 # 삭제 답글

    왠지 힘나는 글이네요.... 누군가는 힘든 시간을 회상하면서 후회하는 글들이 많은데, 이 글은 ^^;;;
  • 빨빤 2008/06/18 11:18 # 삭제 답글

    내가 만약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오토바이 안탔을겁니다 ㅋㅋㅋㅋㅋ
  • Daisy 2008/06/18 13:53 # 삭제 답글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
    그러나, 앞으로 잘하면 되지!! 에 공감 일곱표 던져요~ ㅎㅎㅎ
  • 소녀시대 2008/06/23 15:55 # 삭제 답글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야. 다른 나라들은 우리처럼 이민을 많이가는 분들 없을거야. 다들 자기 나라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는데. 우리나라는 .돈이 생기면 바로 이민 아니면 유학을 가지요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을가서 말이 안되면 짜증을 내고. 누가 유학을 가래? 유학 아니면 이민가서 사는게 더 좋아졌냐? 배신자들. 미국에서 잘 사라봐. 한시한 녀석들.
  • 월드문 2009/07/07 22:29 # 삭제 답글

    당당하지 못한 소녀시대 야!!!!!!!!!!!!
    남들이 뭘하던 뭘 선택하던 당신의 일도 아닌데
    함부로 말하지마쇼
    다,, 자신만의 주관이 있는 것이니 그게 옳다 그르다는 없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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